이집트 여행기 (6) - 시와 오아시스 前篇

 

어느 새 잠이 들었었는지, 야간 버스의 찬 에어콘 바람에 눈을 뜬다. 후루가다에서 알렉산드리아 직행 버스를 탄 지 벌써 7시간 째, 하지만 아직 2시간 정도 더 가야 하는 길이다. 밤의 찬 기운에 에어콘 바람을 더한 추위를 막기 위해 가방에서 주섬주섬 긴 팔의 자켓 라이너를 꺼내 입는다. 다시 잠을 청하고자 자세를 고쳐 눕는다. 세상이 세 조각 나도 쿨쿨 잠만 잘 거라는 비아냥을 듣는 필자이기에, 버스에서건 기차에서건 심지어 매트리스가 두 개로 분리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푹 꺼진 매트리스에서건 졸리면 자는 거다.

이래저래 도착한 알렉산드리아. 시각은 오전 5시. 아무리 이집트라지만 알렉산드리아는 가장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고 시간도 시간이니 만큼 쌀쌀하다. 일단 추위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차를 파는 곳을 찾는다. 두리번두리번 대다 보니 화장실 옆에 조그마한 가게가 있다. 차는 50피아스타, 우리나라 돈으로 100원이 채 안 되는 가격이다. 차를 한 잔 마시고 버스 터미널로 들어가 시와행 버스표를 예매한다. 출발 시간은 8시 30분. 약 3시간 30분 정도 남았다. 새벽 시간에 도시를 둘러본다 해도 볼 것도 없을 것 같고, 무엇보다 버스 터미널에서 알렉산드리아 중심지까지는 걸어서 갈만한 거리가 아니다. 그런 고로 터미널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결정!

버스 출발을 알리는 방송 소리를 따라가 보니 표 파는 곳 안에서 어떤 아저씨가 마이크를 잡고 아랍어로 떠들고 있었다. 아저씨 옆에 있는 의자에 슬쩍 앉는다. 아저씨가 쳐다보길래 씨익 웃어주고 '살람-' 한 마디. 터미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뭔가 이방인인 내가 신기했는지 하나 둘씩 내 주위로 모여든다. 물론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지만 뭔가 어떻게 손짓 발짓 몸짓 해 가면서 의사소통을 한다. 아저씨들 중에 한 명의 이름이 아랍어로 '당나귀'라는 뜻인가 보다. 사람들이 그걸 가지고 계속 놀리는 듯한 분위기. 갑자기 한 아저씨가 종이에 당나귀 그림을 그려서 가져 오더니 당나귀 아저씨 머리 위에 든다. 그러더니 필자에게 사진 찍어 줘- 라는 뜻의 신체어를 한다. 재미도 있고 해서 한 장 찰칵.누군가 툭툭 치길래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새 잠들어 있었다. 어이, 너란 녀석은... 아까 놀던 아저씨 중 한 명이 '시와!'라고 외치며 밖을 가리킨다. 시간은 8시 20분. 벌써 버스 시간이 다 됐구나. '슈크란-'하고,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아랍어를 날린 후 잽싸게 버스에 올라탄다. 편히 누워서 자 볼까, 하고 맨 뒤로 가 앉는다. 버스가 출발하고, 맨 뒷자리에 기분 좋게 누워서 잠을 청했다.

[당나귀 아저씨와 그의 친구들 ^^]


,라고 생각했지만 20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표에 찍혀 있는 좌석번호의 자리로 쫓겨났다. 의외로 이 시와 가는 버스는 사람이 만원이었던 거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간 정류장에서 타는 사람이 많았다. 옆 자리에는 마음씨 좋게 생긴 머리 희끗희끗한 이집트 아저씨 한 분, 그러나 결정적으로 뚱뚱해서 필자의 좌석의 1/4는 차지하고 앉는다는 게 흠이었다. 이대로 시와까지는 또 9시간. 그럼 후루가다에서 시와는 18시간?! 이 나라는 넓기도 하다. 앞 자리 좌석이 고장나서 사람이 조금만 뒤로 기대도 의자가 확 넘어오는 안 좋은 조건에서 9시간을 가려니 참을성 많은 나도 약간은 짜증. 3시간 정도 갔을까, 옆 자리 아저씨가 갑자기 앞에 매달아 놨던 비닐봉지에서 부스럭거리더니 빵을 하나 꺼낸다. 아침은 대충 차 파는 가게에 있던 과자로 때운 필자, 배가 고파졌다. 잉- ㅠ_ㅠ 앗, 그런데 지성이면 감천이고, 꿈☆은 이루어진다더니, 이 아저씨 나에게도 빵을 하나 권한다! 한 번 사양하지도 않고 감사합니다! 하며 맛있게 쩝쩝 우걱우걱 빵을 먹는다. 빵 안에는 무려 간(肝)이 들어 있었다. 소 간인지 양 간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필자는 모든 내장을 좋아하기 때문에 상관 없다. 히히- 이게 왠 횡재냐 싶어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다 먹어 치워 버렸다. 아저씨, 두 개 째 빵을 꺼내서 먹더니 나에게도 또 하나 권한다. 이번에는 한 번 정도 예의상 사양한 후 빵을 받아 아직 덜 찬 배에 탄수화물을 쌓아간다. 이번 녀석은 무려 케밥이다. 와아- 다양한 메뉴! 10분 뒤 또 건네준 빵에는 디저트 정도 되는 녀석인지 파인애플이 들어 있었다. 헤헤, 아저씨! 슈크란~!

이 아저씨 대충 잘 안 되는 영어와 도화(圖話), 아랍어 등을 섞어 가며 자신이 현대자동차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했다. 와아- 그래서 그런지 한국 칭찬도 많이 하고. 외국에 나와 삼성이나 현대 얘기를 꺼내면 거의 다 알기 때문에 화제로 삼기 좋다. 물론 필자에게는 화제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대기업 몇 개로 한국이 정의되고, 정의된 한국에 의해 나도 정의되어 버리는 건 약간 기분 나쁠까나.

아무튼 7시간 정도 지중해를 따라 달리자 사막에 들어섰다. 이쪽 사막은 모래가 조금 많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이나 시나이 반도 쪽 사막과 비슷하다. 사막 한가운데에 휴게소가 있어 잠시 내렸다. 사막 풍경도 한 번 찍어주고, 체내 수분 함유량의 조절을 위해 일도 봐 주고. 사막 풍경을 찍고 있으려니 이집트 청년 몇이 다가와 쭈뼛쭈뼛 한다. 사진 찍어 줘? 라는 신체어를 구사하니 베리 굿~ 하며 좋아한다. 이쪽도 사진 찍히는 것보다는 찍는 게 더 좋으니 한 장 찍어준다. 버스에 올라 남은 시간을 보내려니 긴 머리를 한 동양인 남자가 사막을 돌아보고 와 아까의 이집트 사람이랑 같이 사진을 찍는다. 한국 사람일까, 일본 사람일까 궁금했지만 말을 나눌 기회는 없었다.

[시와로 가는 길은 이렇게나 황량하다]

[이집트 사람들. 해맑게도 웃는다]


2시간 정도 더 달리니 갑자기 야자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오, 시와인가 하고 있는 데 빵 아저씨가 '시와~' 라고 한다. 역시 시와였군. 사막 한 가운데에 이런 야자수가 있을 수 있는 건가, 하고 혼자 감탄한다. 계속 이어지는 야자수의 숲 속에 드디어 시와가 모습을 나타낸다. 도착 시간은 오후 5시 30분. 쉴새 없는 장거리 여행으로 지쳐 빨리 숙소를 찾기 위해 미리 들어놨던 요세프 호텔로 향한다. 시와는 작고 사람도 별로 없는 도시이지만, 당나귀 마차 호객꾼들이 많다. 연신 호텔 이름을 불러대며 귀찮게 하는 녀석들에게 씨-익 웃고, '꺼져'라고 한국말로 말해 준다.

살짝 미안하지만, 모르는 말이니까 상관없겠지. 어차피 'ㄲ,ㅓ,ㅈ,ㅕ'라는 각각의 음소들이 모여서 생기는 음향적 사건에 대해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한국인 밖에 없는 것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 따라서 내가 그들에게 '꺼져'라고 해봤자 거기에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귀찮게 굴지 말고 사라져'라는 의미는 없다. 있는 것은 음향적 사건과 나의 미소. 따라서 그들은 '꺼져'를 '정말 죄송하지만 괜찮아요'라고 이해했을 거다. 그렇다면 '귀찮게 굴지 말고 사라져'라고 해서 나의 기분을 푸는 것과 '저 외국인은 정중하게 거절하네'라고 이집트 사람들이 느끼는 것의 두 가지가 한꺼번에 성립이 된다. 이거야말로 글로벌 시대의 윈윈게임 전략 아니겠는가? 승부수는 미소에 있다. 흔들리지 않는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라

아니, 뭔가 샛길로 나간 것 같으니 바로잡아 보자. 그래서 도착한 요세프 호텔, 접수처에는 먼저 온 손님이 있었으니, 아까의 머리 긴 동양인이었다. 여권은 붉은색 표지에 일본어로 써 있었다. 마침 싱글룸은 다 나가고 없어서 더블룸을 혼자 써야 하는 사정인 것 같다. 흔쾌히 방을 같이 쓰는 데 동의한다. 무엇보다 숙박비가 반이 되고, 짧은 일본어 실력을 테스트 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대충 짐을 풀고 밖으로 나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일본 사람의 이름은 히구치 노조미. 여자 이름 아니에요? 하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그것은 흩날리는 벚꽃처럼'의 히로인 이름 아니에요? 라고 물어보는 건 참아 두기로 했다. 무엇보다 닮은 건 이름과 긴 머리 밖에 없었으니까 :)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데 접수처의 이집트 사람이 한국 사람이 한 명 왔다고 알려 준다. 어차피 사막 투어도 할 거였는데 한국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얼른 위층으로 올라가 본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어라, 거기에 있는 건 덩치 좋고 얼굴 동글동글한 한국 사람, 건이씨였다. 이집트, 이 땅도 꽤나 좁은 땅인 거다. 마르사 알람에서 헤어지고 시와에서 만날 줄이야. 그 때 계단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 룩소르 게스트 하우스에서 잠시 만났다가 헤어졌던 정미 씨였다. 이건 정말, 만만치 않은 상황이군요. ^^

[왼쪽이 노조미 씨, 오른쪽은 정미 누나]


이렇게 해서 뭔가 멤버들이 다시 모여 버렸다. 건과 정미, 두 사람은 시와뿐 아니라 앞으로도 필자의 마지막 여행지까지인 다하브까지 함께 한 여행 동료가 된다. 이 세 사람에 노조미 씨까지 더해 네 명이 시와 오아시스 사막 투어를 하기로 하였다. 일단 요세프 호텔 사막 투어 비용은 1인당 80파운드이며, 사막 입장료 10달러가 따로 있었다. 정미 누나는 조금 더 싼 곳이 있을지 모른다며 일단 내일 아침에 다른 곳도 알아 보고 결정하자- 라고 하였고 나머지 모두 찬성. 그렇게 사막 투어의 날은 다가오고 있었고, 네 명은 늦은 밤까지 한국어, 영어, 일어를 섞어가며 수다를 떨었다. 특히나 얌전한 줄로만 알았던 건이와 노조미 씨의 만화 캐릭터 흉내로 정미 누나와 필자는 거의 실신할 지경까지 웃어대었다는-



** 시와 오아시스 - 後篇에 계속...

P.S. 아래 이미지들은 시와 투어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시와 마을을 돌아보던 중, 마을 어린이들의 축제에서 찍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