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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에서 아스완까지는 기차로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터덜터덜 2등석에 앉아 옆자리의 소라씨와 별 의미없는 얘기를 주고 받고 있으니 어느덧 아스완 역에 도착했다. 아스완 역은 근래에 역사를 새로 단장한 듯 깨끗했다. 한창 공사 중인 룩소르 역과는 다른 모습. 우선 잠시 몸을 맡길 호텔을 찾기로 한다.
[내려다본 거리]
뭐, 이러고 있을 시간은 없다. 조금이라도 더 눈을 붙여야 내일의 투어를 피곤하지 않게 끝낼 수 있으니. 눈을 감고 자자, 자자.... 라고 한 순간 알람이 울린다. 그 새 4시간이나 지나 새벽 3시. 보통 아부심벨 투어는 새벽 3시 30분부터 시작한다. 조금만 더 자고 싶은걸... 이라는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세수를 한다. 준비는 15분만에 완료. 호텔 아래로 내려가 투어 차량을 기다린다. 필자가 참여한 투어는 '롱 투어'로 아부심벨 신전과 하이 댐, 필레 신전을 돌아보는 투어다. '숏 투어'는 아부심벨 신전만 돌아보는 것. 하이 댐은 어떻게 생겼는지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지만, 필레 신전을 보기 위해 롱 투어에 참여하기로 한 것.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운전수가 데리러 왔다. 여기저기의 호텔에서 참여한 사람들이 벌써 미니버스에 타 있다. 중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정말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모든 투어 차량은 아스완 외곽에서 모여 한 번에 간다. 외국인 관광객 보호를 이유로 경찰이 동행해야만 국도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차들이 모인 곳에서 조금 기다린다. 안에서 기다리는 것은 지루하니 밖으로 나와 본다. 새벽에 볼 수 있는 별 - 금성이 보인다. 잽싸게 삼각대를 꺼내고 촬영 준비 완료! 코니카미놀타 Z5의 최대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4초밖에 안 되는 노출 시간에도 불구하고 촬영에 임한다. 사진은 생각보다 깔끔하게 나왔지만, 별 하나만 찍는 건 확실히 뭔가 어색하다. 쳇쳇... 지워 버렸다. 그러던 사이, 차들이 다 모이고 출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 안에서 곯아 떨어졌다. 아스완에서 아부심벨 신전까지는 차로 3시간 거리. 필자도 잠을 청했다. 쿨... 뭔가 사람들이 부시럭 대는 기척에 눈을 떠 봤다. 아앗, 일출이다!! 또 잽싸게 찰칵찰칵...
[아부심벨 가는 길의 일출]
해는 완연히 뜨고, 아부심벨 신전에 도착했다. 운전수는 9시 반에 봐요~ 라며 어디론가 차를 끌고 사라진다.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 발길을 옮긴다. 조금 기다려서 표를 사고 들어간다. 옆의 소라씨가 설명을 듣고 싶다고 해서 대충 알고 있는 대로 주절거리며 돌아본다. 사실, 유적 답사는 혼자 해야 하는 것을... 뭔가 말을 하게 되면 집중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옆에 있는 사람을 무시할 수도 없고... 게다가 이 처녀, '상상'을 목적으로 하는 필자와는 달리 '사실'에 집착하는 스타일이라 별로 재미도 없고... 거기에 관광객들이 터질 듯이 많아서 결국 필자가 그렸던 '웅대한 아부심벨 신전 앞에서의 고독한 상상'은 와장창 깨져 버리고 필자도 많은 관광객의 일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제기랄!! 아부심벨 신전은 대신전과 소신전, 두 신전이 있다. 대신전은 람세스2세를 위해 지어진 것이고, 소신전은 그의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해 지어진 것. 왕비를 위해 지어진 신전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만큼 람세스2세는 네페르타리를 사랑한 것일까? 소신전 앞에는 네페르타리의 석상이 아름답게 남아 있다. 흔한 관광객으로 전락한 필자지만 이 앞에서만은 다시 감동. 안으로 들어가면 네페르타리의 모습이 벽화로 남아 있다. 람세스2세의 등 뒤에서 힘을 실어주는 듯하나 모습. 젠장, 부럽다!! 나도 파라오가 되어서 사랑하는 여인에게 신전을-! (어이, 나라를 책임져야지 일단은...) 사실 대신전 내부는, 기억나지 않는다. 관광객이 일렬로 줄지어 각각의 방을 돌아보고 나오는 식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다만 가장 안쪽 중앙의 석실에 있던 신들의 석상은 기억에 남는다. 라, 아몬, 프타, 그리고 람세스2세 자신. 참고로 소신전은 하토르 여신의 신전이다. 후훗.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춘분과 추분이 되는 날에 떠오르는 아침해가 이 안쪽의 석실을 비추게 되어 있다고 한다. 대, 대단해-
[아부심벨 대신전]
[아부심벨 소신전] 아무튼, 기대했던 감흥은 얻지 못한 채, 다음 목적지인 하이 댐으로 향한다. 이번에도 약 2~3시간 거리. 더워지고 있다... 게다가 8파운드 씩이나(!) 주고 들어 간 하이 댐은 소양강호를 볼 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고, 마지막 목적지인 필레 신전에 도착했을 때 섬에 위치한 필레 신전으로 들어가기 위해 현지 배주인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은 매우 짜증났다. 더위, 피로, 싫은 인간들의 삼박자가 조화를 이루며 짜증을 배가 시키는 것. 여차저차 개인당 5파운드라는 가격에 합의를 보고 배를 타고 필레 신전으로 들어간다.
[필레 신전의 아름다운 모습] 아아, 짜증이 날아간다. 호수 위에 살포시 올려진 필레 신전의 모습은 하나의 작품과도 같았다. 배에서 내려 섬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이곳은, 천국인가? 고대 이집트 당시에 여기에 살던 사제들은 정말 경건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실 생각해 보니 이 필레 신전도 수몰 위기에 몰려 옮겨 지은 것이었다. 쳇...)
[필레 신전의 모습]
필레 신전은 중앙 신전과 그 옆에 위치한 소신전, 그리고 뒷쪽에 있는 아우구스투스 신전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신전은 오시리스 신과 이시스 여신에게 봉헌된 것. 소신전은 화려한 기둥머리가 눈길을 끈다. 꽃의 모양을 본따서 만들어졌다고 하는 기둥머리이다. 어째서인지 놀랍게도 복원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정말 원래 그대로인가 의심할 정도로... 왜 이런 의심이 드는가 하면, 필자가 보기에 중앙 신전의 복원은 정말 형편없기 때문이다. 현대 건축물도 아닌데 신전의 좌우대칭은 전혀 무시한데다가 가장 바깥의 벽은 신전 전체와 수직인 위치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약간 틀어져 있다. 수몰 위기에서 구한 건 좋지만, 그 후 처리도 깔끔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게다가 이 신전에 남아 있는 거의 모든 부조의 얼굴이 고의로 깎여나가 있다. 들어보니 콥트 기독교도들의 소행이라고. 게다가 자랑스럽게도 기둥에 콥트 십자가까지 새겨놨다. 이런 정신나간 자들... 신앙과 유적을 구분 못하는 자들에게 천벌이 있으리.
[소신전의 아름다운 기둥을 보라]
[살짝 틀어져 놓인 벽. 부조는 멋있다] 살짝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가라앉히며 바깥 벽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각기 다른 양식의 기둥머리를 가진 열주가 양쪽으로 뻗어 있다. 통일성보다는 개성인가? 라메세움의 것보다는 못하지만 이 곳의 기둥도 나름대로 의미있다. 가장 안쪽까지 들어가 본다. 안쪽의 중앙 석실에는 놀랍게도 '제단'이 있었다. 다른 신전들은 보통 신의 석상이 있기 마련인데, 이 곳의 석실에는 제단, 이라... 설마 석상이 유실되어 대신 놓은 것을 아닐 거고,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다시 상상력 발현 시간 - 이 신전이 봉헌된 오시리스 신은 신화 속에서 세트 신에 의해 온몸이 갈가리 찢겨 이집트 전역에 뿌려진다. 이시스 여신은 그 잔해를 모아 오시리스 신을 다시 부활시킨다. 신화를 재현하는 것이 제의의 한 부분이라면... 오시리스 신에게 바쳐지는 제의에는 '갈가리 찢긴 희생양'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을 한데 모아 재생의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이 제단은 재생 의식을 위해 있던 것이 아닐까? - 놀라운 상상력이십니다... 쿡쿡. 석실 벽에는 오시리스 신과 이시스 여신의 부조, 그리고 이시스 여신과 그의 아들 호루스 신의 부조가 있었다. 신전과 관련된, 의미깊은 부조이니 찰칵.
[각각의 양식을 지닌 열주]
[이것이 제의를 위한 제단]
[아기 호루스 신에게 젖먹이는 이시스 여신]
[오시리스 신이 이시스 여신의 날개에 감싸여 있다]
필레 신전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다시 배에 몸을 싣고 돌아온다. 길었던 아스완-아부심벨 투어의 끝. 이제 오후 6시 카이로행 기차를 타고 시와까지 갈 일만 남았다. 기차 시간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아스완 시내 공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공원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언제나 삶에 찌든 이집트 아이들만 보다가 이렇게 천진난만하게 노는 아이들을 보니 내 마음도 즐거워진다. 나일 강변에도 잠시 가서 나일강에 떠 있는 펠루카들의 모습도 찍어둔다. 비록 타지는 못했지만 모습이라도 기억에 남겨두자. 다음에 올 때에는 반드시 타 봐야지.
[나일강에 떠 있는 아름다운 펠루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