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행기 (3) - 룩소르 2일차 (룩소르 서안) 룩소르 서안의 주 목표지는 바로 네페르타리 왕비의 무덤이었다....

Posted in 여행기  /  by 베르쨩  /  on Jun 05, 2006 06:08

이집트 여행기 (3) - 룩소르 2일차 (룩소르 서안) 

룩소르 서안의 주 목표지는 바로 네페르타리 왕비의 무덤이었다. 하루에 한정된 수만 받는다는 그 무덤. 네페르타리 왕비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는 그 무덤. 입장료 역시 가장 비싸다는 그 무덤... 필자는 그 무덤을 보기 위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5시에 동안의 페리 선착장으로 향했다. 뭐, 4시 쯤 되면 이슬람 사원에서 방송으로 크게 경을 읽어주니 알람이 필요 없다 -_-;

동안에서 서안까지 운행하는 페리의 가격은 1파운드. 새벽이라 제법 쌀쌀해서 긴 팔을 입었다. 페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려니 이집트인 하나가 와서 옆에 앉는다. 택시 투어 흥정을 위해 온 녀석이었다. 원래 나도 택시를 빌려서 돌아다닐 예정이었고 해서 받아주었다. 말을 몇 마디 해 보니 나름대로 친절해 보이고, 무엇보다 처음부터 80파운드라는, 이집트에서는 대략 상상할 수 없는 초기 가격을 제시해서 이리저리 얘기해 보다가 55파운드에 합의를 보았다. 서안 택시 투어는 몇 군데의 유적을 돌아보는지가 가격의 주요 조건. 세 군데에 40파운드로 합의 보았다는 여자 세 분의 말씀이 있었다. 네 군데에 55파운드면 적어도 바가지를 쓴 가격은 아니니 만족. 게다가 반나절 택시 대여에 만 원도 안 되는 셈 아닌가. 그리하여 페리 선착장에 내린 후, 투어 시작!

우선 통합 매표소로 가서 표를 사야 한다. 원래 목적지는 왕들의 계곡, 라메세움, 왕비의 계곡, 하부 신전 (람세스3세 신전)이었으나... 이게 왠 낭패!! 네페르타리 왕비의 무덤은 보존을 위해 문을 닫았다는 것이 아닌가 ㅠ_ㅠ 좌...절... 어쩔 수 없이 목적지를 수정해서 왕비의 계곡 대신 핫쳅수트 대장제전을 가기로 하였다. 통합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 하는 곳은 라메세움과 하부 신전. 왕들의 계곡과 핫쳅수트 대장제전은 따로 매표소가 있다. 표를 사고 나서는 잽싸게 왕들의 계곡으로 이동.


[왕들의 계곡으로 가는 길에 있는 팻말. 고대 유적으로 먹고 사는 이집트의 현재 모습이 떠올라 쓴 웃음 짓고...]

왕들의 계곡은 당연히 한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착 시간은 오전 6시. 아마 단체 관광객들은 지금쯤 일어나서 이동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 -_-V 왕들의 계곡 매표소에서 표를 산다. 표는 학생할인 받아 30파운드, 3장의 티켓을 준다. 따라서 세 군데의 무덤을 둘러 볼 수 있는 것. 투탕카문 무덤은 예외로 돈을 더 내야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투탕카문에는 별 관심 없는 필자는 패스.

그런데, 두 번째 낭패!! 왕들의 계곡에서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람세스2세 무덤과 세티1세 무덤이 모두 휴식 중이었다! 충격과 공포가 필자를 엄습하고, 2분 가량 패닉 상태에 빠져 제자리를 맴돌다가 잠시 멈춰서 이집트까지 와서 이러면 안 된다고 자신을 달랬다. 그렇다,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 비록 역사에는 전혀 멋있게 그려지고 있지 않지만, 소설 '람세스'에서는 멋있게 나오는 메렌프타의 무덤을 일단 들어가기로 했다. 후훗... 역시 별 거 없구만... 지옥을 지키는 신인 아누비스의 벽화와 재생의 신 호루스 등을 보며 계단을 내려간다. 지하인데도 내려갈 수록 더워지는 건 왜일까? 맨 밑의 지하에는 석관과 그것을 보존하기 위한 방이 자리한다. 눈에 띈 것은 천정 부근의 벽화. 다른 모든 이집트의 벽화는 언제나 아래가 땅이고 위가 하늘이며 사람은 똑바로 서 있다. 하지만 이 벽화, 오직 이 벽화에서만 사람이 거꾸로 서 있다. 아마도 땅과는 다른, 하늘이나 우주의 이미지를 나타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왼쪽과 오른쪽 상단의 사람들이 거꾸로 서 있다]

관리인이 손짓을 하며 석관의 밑을 보라고 한다. 말을 들으면 팁을 요구하는 건 아닐까 의심스러워 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한 번 보았다. 있는 것은 이시스 여신의 모습 - 보호와 방어를 상징하는 여신이다. '땡큐~'하며 감사를 표하자 한 번 씩 웃는 관리인. 이집트 인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상업성 이집트인과 비상업성 이집트인이다. 상업성 이집트인은 짜증나고 상대하기 귀찮으며 돈 밖에 모르는 것으로 보이는 반면, 비상업성 이집트인은 너무나 사람이 좋고, 정말 푸근하며 온정을 느낄 수 있다.

여튼 이래저래 메렌프타 무덤에서 40분 가량을 소요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해도 완연히 떠 있고, 날씨도 더워지기 시작. 그것보다 심각한 것은 단체관광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지만... 안 그래도 좁은 무덤 입구를 단체 관광객과 함께 들어가려면 줄을 지어 들어가야 한다. 유적 관광만큼은 Freedom! 이라는 필자의 철학과는 완벽히 상반되는... 벽화가 아름답다고 해서 들어갔던 투트모스3세의 무덤은 그래서 짜증이 나는 거다. 절벽의 철제 계단을 올라가야 볼 수 있다고 해서,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안 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무개념 유럽/미국 단체 관광객들의 역습에 침몰당해 버렸다. 원래 지하로 내려갈 수록 더워지는 데다가 사람으로 꽉 찬 무덤은 한증막에 가까워져 오고...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필자는 줄에서 이탈하여 혼자 벽화를 감상하는 데에 성공한다. 벽화를 자세히 보면 인물이 그려져 있고 그 옆에는 이름이 신성문자로 쓰여있다. 아, 신성문자를 읽을 수 있다면 분명 아는 인물의 이름 한 두개 정도는 발견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물밀듯이 밀려 온다. 게다가 투트모스3세 무덤의 벽화는 아름다운지는 모르겠으나 보존상태가 좋았다. 다음엔 반드시 신성문자 읽기를 배워 온다!고 다짐하며 사람들 틈에 끼어 다시 빠져 나왔다.

고작 무덤 두 개를 돌았는데 벌써 8시 15분. 택시 기사와 약속한 시간은 8시였다. 서둘러 왕들의 계곡 입구로 간다. "두 시간 동안 정말 많이 기다렸어-" 라며 투덜대는 택시 기사에게 쏘리를 연발하며 다음 목표지인 핫쳅수트 대장제전으로 간다. 핫쳅수트 대장제전 역시 앞에 따로 매표소가 있다. 학생 요금 11파운드이며 트램카 요금 1파운드가 포함되어 있다... 왜 필자는 이것을 빨리 깨닫지 못하고 걸어 간 것일까 -_-;;; 여튼 걸어도 1분이면 가는 곳이니 크게 문제는 없다. 이곳은 전체 3층의 큰 신전이며, 1층은 왠지 모르게 줄이 쳐 있고 군인이 지키고 있어 들어갈 수 없는 곳처럼 보인다. 중앙의 큰 계단은 필자를 3층으로 인도한다. 3층에는 막 복구한 것처럼 보이는 기둥 여섯 개가 서 있고, 그 안쪽의 석실로 된, 아몬신에게 바쳐지는 제단은 여러 개의 방으로 되어 있지만 들어갈 수는 없다. 3층을 둘러보면 나일강에 배를 띄운 파라오의 모습을 그린 벽화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사람들이 볼만한 것은 별로 없으므로 필자는 한가롭게 거닐며 벽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핫쳅수트 대장제전은 다각기둥의 양식을 보여준다. 동안에서는 볼 수 없는 양식이다. 지금은 그냥 밋밋한 다각기둥에 지나지 않지만 곳곳에 남아 있는 부조의 흔적은 3천년 전에는 아마도 모든 기둥들이 신성문자나 부조로 뒤덮여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게 한다. 3층에서 장제전 입구 쪽을 내려다 보면 넓게 펼쳐진 룩소르의 평원을 볼 수 있다. 필자가 기억하기로 이집트 여행에서 가장 좋은 전망이었다. 2층으로 내려오면 양쪽으로 하토르 신전과 아누비스 신전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하토르 신전 쪽으로 가 본다. 신전의 주인인 하토르 여신이 황소의 모습을 하고 벽에 그려져 있다. 하토르 여신은 풍요와 번영의 상징, 나일 강 유역의 농사로 먹고 살았던 고대 이집트 인들에게 중요한 여신이었으리라. 신전의 입구는 역시 막혀 있다. 석실 한 쪽 벽의 하토르 여신을 발견하고 한 컷. 반대쪽의 아누비스 신전으로 가 본다. 아누비스 신전은 하토르 신전의 부조에 비해 훨씬 색채가 살아 있다. 아누비스 신은 저승을 관리하는 신 - 사후 세계에 특히나 관심이 많았던 이집트 인들에게는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신전의 벽에는 아누비스 신에게 바쳐진 공물들이 그려져 있다.


 [핫쳅수트 대장제전 기둥 양식]


[대장제전에서 바라본 전경]


[하토르 여신을 상징하는 황소]


[아누비스 신과 바쳐진 공물]

약 1시간 30분을 소요하고 다시 택시 기사와 만났다. 이번에도 20분 지각해 버렸다. 투덜투덜대는 택시기사를 또 달래서 다음 목적지인 라메세움, 람세스2세가 세운 영원의 신전으로 향한다. 이곳은 별로 볼거리가 없다고 알려져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다. 오전 10시라는 '피크 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별로 없었다. 후훗... -_-V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정말 제대로 된 기둥을 보기 위해서는 카르낙 신전이 아닌 라메세움을 택해야 한다. 연꽃의 모습을 모방했다는 중앙 열주의 기둥 머리는 화려한 색채를 아직 간직하고 있다. 죽 뻗은 기둥위로 지나가는 2층의 돌서까래들은 뜨거운 이집트의 태양을 막는 우산 구실을 한다. 기둥과 벽에 새겨진 부조들은 신의 가호를 받은 파라오의 영광을 재현한다. 사람이 없는 열주에 들어서면 순간 이 곳이 세계와 유리된 영원의 장소라도 된 듯 시간이 멈추고, 이윽고 거꾸로 돌아가 3천년 전으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 눈을 감으면 망막 저편에 한가롭게 거니는 사제들과 시녀들을 볼 수 있다. 이것이다! 유적의 힘은. 사람을 상상의 공간으로 데려가는 힘 - 과거를 보여주고, 그래서 미래를 꿈꾸게 하는 힘.


[라메세움 전경]


[라메세움의 중앙 열주]


[보라, 기둥과 벽의 부조!!]

라메세움 앞 쪽에는 마주보고 선 람세스2세의 석상이 있다. 석상 뒤편의 벽에는, 그 유명한 '카데슈 전투'의 부조가, 마치 살아 있는 듯이 새겨져 있다. 마차를 타고 활을 당기며 선두에 선 람세스 - 그리고 그의 말발굽 아래 종이처럼 무너지는 히타이트 군사들... 소설 '람세스'에서 거의 다 무너졌던 전선을 아몬 신의 가호로 이겨내는 람세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크리스티앙 자크도 이 벽화를 보고 카데슈 전투 장면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카데슈 전투 당시의 람세스2세]


[쓰러지는 히타이트 병사들]

어느덧 시간은 11시, 마지막 하부 신전이다. 규모가 카르낙 신전과 필적한다고 할 만큼 커다란 신전이다. 하지만 아직 발굴 중인 곳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원래 이곳은 채석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3천년 전에는 신성한 곳으로 돌 조각 하나하나에 그 힘이 깃들여져있다고 믿어지던 곳이 돌 캐는 곳으로 변해버렸다니...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게다. 사회가 바뀜에 따라 신전이 차지하는 위치도 변하고, 채석장까지 떨어지게 된 것은...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

하부 신전에 들어서면 커다란 벽이 맞이한다. 양쪽에는 아몬 신과 라 신이 파라오에게 권능을 부여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역시 신왕조 시대의 주신은 아몬과 라 - 태양신들이었나보다. 이곳은 부조가 잘 살아 있다. 하지만 더위에 지친 나머지 부조를 자세히 보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쉽다. 거의 모든 이집트의 신전들이 문 위에 방어의 의미를 지닌 이시스 여신을 그려 넣는다. 여기도 문 앞 천정에 이시스 여신의 상징인 날개가 여러 개 그려져 있다. 이런 것을 발견하는 재미, 쏠쏠하다.


[하부 신전 전면]


[천정의 이시스 여신의 상징]

가장 안 쪽에는 하토르 여신을 비롯한 4개의 신의 석상이 놓여져 있다. 아쉽게도 파손되어 누구인지 알아 볼 수는 없었다. 고고학자들이라면 알아볼 수 있었겠지만. 하부 신전에서 발견한, 이집트 신전의 보통 구조. 가운데에는 의식을 올리고 제물을 봉헌하는 곳이 있으며, 양쪽 옆에 겹으로 된 작은 방이 있다. 아마도 제의를 준비하기 위한 방으로 쓰였겠지. 이 구조는 후에 아부심벨, 필레 신전에서도 똑같이 발견되었다. 아기 고고학자 탄생! -_-V

원래 약 한 시간 정도 소비할 생각이었지만, 너무 더워 견딜 수 없어 35분 만에 둘러 보고 나왔다. 네페르타리 무덤을 보러 다시 올 때에 들러 좀 더 자세히 봐야지- 하며. 택시를 타고 다시 선착장에 와서 약속했던 55파운드에 팁 20파운드를 얹어 준다. 10파운드 정도면 충분하겠지만, 시간도 많이 어기고 기사도 착하고 해서 후하게 쳐 줬다. 다시 페리를 타고 넘어오는 길에 사탕수수 쥬스 한 잔. 4파운드 하는 쿠샤리 하나 사들고 숙소로 돌아오니 어느 덧 오후 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페리 앞을 지나간 '타이타닉' 호!!!]

어제 만났던 두 사람이 숙소에 있었다. 표를 예매하러 같이 가고... 여자 분은 소라, 남자 분은 건,이라고 한다. 소라씨와 아스완, 아부심벨을 돌아보고 다음날 올라오는 기차에서 건이씨를 만나 같이 시와 오아시스로 가기로 하였다. 오후 5시 기차로 소라씨와 함께 아스완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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