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행기 (2) - 룩소르 1일차 (룩소르 동안)


 


이집트 열차에는 안내 방송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데다가 역 안에서 영어 간판은 찾기 힘든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모든 정차역에서 일일이 현지인들에게 "룩소르?"라고 물어보는 수 밖에 없었다. 뭐, 그러길 9시간, 드디어 "룩소르!"라고 대답해 주는 현지인들- 심지어 차장까지 나에게 와서 "룩소르"라고 해 주는 것이 아닌가. 이집션들의 친절함에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며, 학교 가방 2/3 정도가 차 있는 나의 단촐한 짐을 가지고 내렸다.

숙박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룩소르 게스트 하우스. 룩소르의 유일한 한인 민박이다. 굳이 한인민박을 선택한 이유는 여행정보와 여행동료를 찾기 위해서- 하룻밤에 $5라는, 이집트에서는 약간 비싼 축에 속하는 곳이지만, 아침으로 '밥'을 제공해 준다니 결국은 같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결정!

룩소르 역 앞은 택시와 호텔의 호객꾼으로 가득하다. '신명류무시검법'을 동원해 호객꾼들을 뿌리치고, 들은 대로 왼쪽 45도를 쳐다보니 정말 태극기가 있었다 -_-; 매우 찾기 쉬운 곳. 아무튼, 가 보자- 피곤하기도 하고, 씻고 싶기도 하고.

룩소르 게스트 하우스는 어느 호텔 2층을 전세내서 만든 민박이다. 따라서 들어가기 위해서는 호텔 접수처를 거쳐서 들어가야 한다. 리셉션에서 "코리안 게스트 하우스?"라고 물어본다. "예스"라고 간단히 대답해 주고 2층으로 올라갔다. "실례합니다-" 하며 들어선 게스트 하우스는 그야말로 정적. 뭐, 시간도 이미 오전 11시를 넘기고 있으니 여행객들이라면 다들 여행에 나섰을 시간. 접수처, 처럼 생긴 곳에서 빨간 옷을 입은 남자 한 분이 인터넷을 즐기고 계시다.

"아, 저 여기 묵으려고..."
"지금 사장님이 주무시고 계시네요-. 4인실이랑 6인실 있는데."
"6인실이요."
"207호에 짐 푸시면 되요."

당연히 필자는 이 빨간 옷을 입은 분이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 이 사람은 단지 손님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아무튼 6인실 도미토리에 짐을 풀고 -라고 해봤자, 나 이외에 한 명만 사용하고 있었으니 더블룸이었지만- 간단히 샤워를 했다.

자아, 낭비할 시간은 없다. 바로 룩소르 동안을 돌아보기로 결정하고 게스트 하우스를 나선다. 룩소르의 거리는 방사형을 가장한 꼬여 있는 형태라 세심한 주의가 필요. 필자 같은 천연 네비게이션을 탑재한 길찾기의 달인도 가끔 길을 잃어버리니... 여튼 손쉽게 나일강변까지 도달했다. 정보에 따르면 여기에서 카르낙 신전까지는 3km, 걸어서 못 갈 거리도 아니다. 슬슬 산책하는 기분으로 나일강변을 느끼며 걸어가기로 결정!

나일강은 정말 푸르다. 특히나 이렇게 맑은 날씨에는 더욱 더. 그리고 건너편으로 보이는 왕들의 계곡이 자리한 산은 경치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동안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별4개, 5개 짜리의 크루즈들은 나일강의 운치를 해칠 뿐이다. 게다가 그 크루즈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수영복 차림의 서양 노인들은 더더욱. 굳이 노인들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젊음'이 미학적이라는 것만은 확실한 게다.


 


[룩소르 동안에서 본 나일강과 서안의 풍경]

그런데, 이거 의외로 멀잖아. 아무리 장거리 여행에 지쳤어도 3km를 못 걸어갈 몸은 아닌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카르낙 신전에 도착했다. 강변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신전. 처음 보이는 것은 줄지어 있는 스핑크스들과 어딘가 부서진 듯이 보이는 신전의 벽이다. 이 곳의 스핑크스, 어딘지 모르게 양처럼 생겼다. 히히.



 



[카르낙 신전의 전면]

카르낙 신전은 이집트 중왕국 시대(BC 19c), 제12왕조의 센우스레트1세에 의해 처음 건축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무려 BC 2c 프톨레마이오스8세까지 계속 증축되어 지금의 웅장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지만 이런 설명과는 달리 내 눈에 들어온 것은 17, 18, 19왕조 시대의 유적들 뿐이었다. -_-;;

일단 신전을 들어서서 처음 볼 수 있는 것은 신왕국 시대 제19왕조, 필자가 가장 관심있어하는 세티1세와 람세스2세, 람세스3세가 통치했던 시대의 건축이다. 카르낙 신전에서 가장 유명한 대열주홀 역시 이 시대의 건축. 이 시기의 기둥 양식은 이전의 것에 비해 투박하고 단순하다. 람세스3세가 지었다는 신전의 기둥 양식 또한 마찬가지. 대열주홀은 이미 카르낙 신전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곳이니, 사진은 생략.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필자의 눈을 끌었던 것은 람세스2세의 석상, 그리고 발치에 있는 작은 네페르타리의 석상. 머리 부분이 약간 훼손되었지만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된 이 석상 앞에 가만히 서서 바라보길 약 5분 가량. 그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이집트에 도착해서 처음 느꼈던 감동. 거대한 파라오 람세스와 그를 지켜주듯 앞에 서 있는 네페르타리 왕비. 특히 네페르타리의 모습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묘사된 석굴암의 관세음보살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었다. 자애로운 미소, 알맞은 곡선미, 하지만 파라오의 권위를 넘보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왼손에 쥐어진 홀. 이것은 완벽한 '왕비'의 모습이다!


 



                [그저 감동, 또 감동 ㅠ_ㅠ]

권위란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분명 이들은 '파라오'가 아닌 '자기 자신'을 통해 통치했으리라. 아마 일반 백성들도 이들을 위해서라면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일했으리라- 고 생각해 버렸다. 원래 사람이란 자기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이에게 끌려 버리기 마련. 그렇게, 나도 이들에게 끌려 버렸다. 단지 석상일 뿐인데도! 조금은 분했다. 이들과 같은 권위를 지니지 못한 내 자신에게. (어이... 단지 소설을 읽고 이런 감상인 거냐...)

조금 더 가다 보면 그 유명한 핫쳅수트와 투트모스3세의 오벨리스크들 등 제18왕조 시대의 유적들이 나온다. 이 부근은 아직 발굴 중인 듯, 완성되지 않은 유적들과 출입금지를 알리는 줄이 많이 보인다. 괜히 기분 나서 석상들과 함께 한 컷 찍어 보고.


 


[우씨- 다 죽었어!!]

조금 더 들어가면 투트모스3세의 신전이 나온다. 지금이야 발굴된 유적들을 대충 얹어놓아서 썩 좋은 모양새는 아니지만, 3천년 전을 생각해 보면 또 다른 느낌. 게다가 이 신전은 내부에 색채가 아직 남아 있어서 그 때 당시의 화려했을 신전을 상상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투트모스 3세 신전의 내부 기둥]

이 신전 뒤로는 분명 발굴 중인 듯 보이는 유적들이 남아 있다. 이런 기둥은 나무를 엮어 세운 기둥을 모방한 양식이라고 알려져 있다. 뭐, 진실은 아무도 모르겠지만 :) 룩소르 신전의 아멘호텝 3세 대중정에도 이런 양식이 남아 있다. 아마 같은 시대의 것이겠지. 하지만 어째서 18왕조를 사이에 두고 17왕조와 19왕조의 기둥 양식이 비슷한거냐... 고고학을 좀 더 배워야겠다. 대충 여기까지가 카르낙 신전의 전부인 듯 하다. 발굴이 다 안 된 것도, 많은 부분이 유실된 것도 아쉽기만 하지만, 그래도 여기가 이집트 최대의 신전이다. 좋아좋아-


 


[요런 양식의 기둥이다]

다 둘러 보니 시간은 약 오후 2시. 2시간 정도 걸렸군... 잠시 휴게실처럼 생긴 곳에서 물을 마시며 쉬어준다. 아마 다시 걸어 돌아가는 것은 무리일 듯 싶고, 마차를 타고 돌아가기로 결정! 귀족 분위기를 한 번 내 보는 거다, 쿡쿡. 5~10파운드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그냥 12파운드 내고 마차를 잡아 탔다. 마차 주인의 아들 녀석이 처량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할. 여튼 마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가며 중요 인사라도 된 듯 사람들을 향해 손도 흔들어 주고 미소도 지어 본다. 이거, 완전 미친 녀석 아냐-.

그래서 도착한 곳은 룩소르 신전. 람세스2세가 완공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시간없는 여행객들은 밖에서 보고 만다지만, 나름대로 3개월 고고학을 배운 필자, 당연히 들어가 봐야 할 사명을 느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시간도 많다. -_-;;;

룩소르 신전의 정면, 밖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 거대한 람세스2세의 석상 두 개. 아아- 이것만으로도 들어오길 잘 했어. 하지만 뭔가 비대칭이다. 오벨리스크가 하나 밖에 없지 않은가. 들어보니 이 곳의 오벨리스크는 원래 4개. 그 중 두 개는 유실되었고, 나머지 하나는 프랑스 녀석들이 자기네 나라의 무슨 광장에 세워 놨다고. 어이, 미친 거 아냐!!!! 이제부터 프랑스를 싫어하게 되었다. 하지만, 프랑스 녀석들의 만행은 지금부터 시작일 따름이었다!





              [이게 뭐냐고, 이 자식들아!!! 균형이 안 맞잖냐!!]

그건 그렇고, 람세스2세 석상을 둘러보니 발치에 또 작은 석상을 발견.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오른쪽의 석상은 분명 네페르타리의 석상이 분명하지만, 발 사이와 왼쪽에도 석상이 있다. 아쉽게도 형상이 뭉개져 무엇인지 알아볼 수는 없지만. 다시금 상상력 발현의 시간이다. 혹시 저 석상은 람세스2세의 자녀들? 아니면 비운의 히로인, 제2왕비 이제트? 만약 이제트라면, 람세스2세는 여전히 이제트도 그의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인가??!! ..라는 등의 당치 않은 상상을 해 가면서 혼자 좋아한다. 일부일처제는 역시 인간을 구속하는 하나의 제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면서...



 




 




 






석상을 뒤로 하고 짧은 통로를 지나면, 람세스2세의 대중정이 나온다. 넓다란 뜰의 세 방면에는 람세스2세의 석상들이 둘러싸고 있다. 통로 바로 옆의 두 석상은 좌상이고, 나머지는 입상. 하지만, 구태여 이렇게 많은 석상을 세웠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부심벨 신전 정면에도 좌상 4개, 라메세움에도 입상 4개, 하지만 여기에는 무려 10개가 넘는 석상들... 뭘까- 게다가 각각의 입상들 역시 네페르타리로 보이는 조그만 석상을 가지고 있다. 이 신전은, 그에게 그렇게 중요한 신전이었을까? 자신이 시작하고 마무리 지은 앞의 두 신전보다도 더?




[많이도 지었다, 이 자식...]

궁시렁궁시렁 거리면서 조금 더 나아가 본다. 양 옆에는 각각 부부로 보이는 석상과 자녀로 보이는 석상이 놓여 있다. 누구지? 어슬렁거리면서 투어가이드들의 설명을 훔쳐 들어본다. 3명의 투어가이드 모두 부부 석상은 투탕카문과 그의 왕비 안케세나멘이라고 한다. 투탕카문 옥좌에 새겨져 있는 부조로 보아 투탕카문과 안케세나멘의 금슬은 좋았다고 하고, 앳되어 보이는 얼굴도 투탕카문 같으니 부부 석상에 대해서는 큰 의문을 품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자녀 석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상하다. 투탕카문에게는 자녀가 없었을 텐데... 분명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이 자녀 석상은 그럼 누구지? 석상이 놓여있는 곳은 아멘호텝3세 대중정과 람세스2세의 대중정 사이. 그 사이에 위치하는 파라오는 아케나톤, 투탕카문, 람세스1세, 세티1세 정도. 자녀 석상은 큰 아들 하나와 작은 아들, 그리고 작은 딸. 혼자 40분 정도 고민하다가, 편하게 소설 '람세스'에 나오는 카, 메렌프타, 메리타몬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무식한 자의 용기 -_-v



 





[필자를 고민의 늪으로 빠지게 했던 두 석상]

뭐, 아무튼 그래서 펼쳐지는 곳이 열주이다. 카르낙의 것과 비슷하지만 한 줄. 기둥 양식은 카르낙의 그것과 대동소이. 이어지는 곳이 바로 아멘호텝3세의 대중정. 별 석상 없이 넓다란 게 마음에 든다. 아무래도 람세스2세의 건축물에는 석상이 너무 많아, 투덜투덜... 앞서 잠시 언급했던 나무 모양을 모방한 기둥 양식의 열주들이 나를 반긴다. 후후... 대중정을 지나 있는 것은 Sanctuary, 한국어로 옮길 말을 못 찾겠다 -_-; 굳이 하자면 '성소' 정도 될까? 아무튼 작은 방이다. 벽은 온통 신들과 사람을 상징하는 벽화들로 덮여 있다. 태양신 라, 아몬의 모습을 발견하고 찰칵 (내가 아는 얼마 안 되는 신들이다 ^-^;;) 이 뒤 쪽은 알렉산드로스가 세운 방이라고 한다. BC 4세기 정도의 현대(!)에는 관심 없으므로 패스~ 아리스토텔레스라도 나오면 모를까...




                [람세스2세 대중정에서 아멘호텝3세 대중정으로 이어지는 열주]



 




[아멘호텝3세의 대중정]



 




[성소 안의 벽화]

다시 차근차근 신전을 되새김질하며 돌아 나온다. 이 작은(!) 신전에도 이렇게 생각할 거리가 많다니, 이집트란 정말 묘한 동네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다시 곱씹으며, 30분 정도 걸려 신전을 나왔다. 출구로 가는 길은 매우 아름다웠다. 양쪽으로 늘어선 스핑크스들은 카르낙의 그것보다 조금 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보존 상태도 양호해 보였다. 하지만 왠지 고대의 것은 아닌 듯 ^-^; 그래도 불쌍하니 사진 한 컷 찍어준다. 야자수와 함께 잘 어울리는 길이다. 신전을 나서는 사람들의 기분을 산뜻하게 만들어주는 센스에 다시 한 번 감사-.





 




               [대략 요런 느낌 ^-^]

숙소로 돌아오니 여자 하나, 남자 하나, 여행객 두 명이 있었다. 여자분이 오늘 저녁 아스완으로 내려간다면서 같이 가자고 한다. 물론 나는 내일 룩소르 서안을 봐야하기 때문에 패스. 그런데 이 여자분, 혼자 가기 싫다면서 하루 기다린다고 한다. 그러더니 바로 기차표를 취소해 버린다 -_-; 살짝 난감. 게다가 같이 있던 남자분, 여자분이 아스완 갔다가 올라오길 기다려서 같이 시와로 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덩달아 같이 기차표 취소. 우와우와~ 굳이 나 때문에 그럴 필요 없잖아!!




[대략 요런 사람들이었다. 선글라스 맨은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 / 출처: 싸이월드 룩소르 게스트 하우스 클럽]

뭐, 그래서 내일은 룩소르 서안을 돌아보고 저녁 때 아스완으로 내려가게 되어 버렸습니다- 갑자기 힘든 일정이 되어버렸네요 ^-^;; 그럼, 룩소르 2일차에서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