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의 벽

 

1967년 6월, 이스라엘은 일명 6일전쟁으로 요르단으로부터 요르단 서안과 동 예루살렘을 확보했다. 문제는 예루살렘. 요르단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점령이라 하고 이스라엘은 옛 땅의 회복이라고 주장한다.

1967년 6월 7일,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모쉐 다이얀 장군은 다시 방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그 동안 분할되어 있었던 예루살렘을 드디어 통합하였다.....우리의 친구인 기독교와 이슬람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 우리가 예루살렘에 온 것은 타 성지를 차지하거나 간섭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 곳 예루살렘의 거룩함을 보호하고 조화롭게 살기 위함이다."

다이얀 장군의 연설은 다음의 국제 협정과 조약에 기인한 것이다. 1899년과 1907년의 헤이그 협전<전쟁 및 군사 점령 기간의 문화 자산 보호법>의 제 56조항에, 어느 국가도 종교기관을 사적 소유재산으로 인정하거나 이를 고의적으로 파괴하거나 손상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1954년의 헤이그 협정에서 <군사 대치기간 중 문화자산 보호법>에 의해 종교구역 및 문화재에 대한 어떠한 무력 공격이나 군사적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6일 전쟁 직후인 6월 11일,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통곡의 벽 인근의 하라트 알 마가립 지역의 팔레스타인들에게 즉각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명령이 떨어지자 미적거릴 시간도 없이 이스라엘 공병대는 팔레스타인들의 가옥과 건물들을 폭파시켰고 오물문(Dung Gate)으로 밀고 들어온 불도저는 건물잔해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의 커다란 통곡의 벽 광장이 드러났다.

67년까지만 해도 통곡의 벽은 1.5미터의 조그만 통로만이 있었고, 뒤로는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 서 있었다. 요르단치하에서 통곡의 벽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던 유대인들은 135채의 가옥과 두채의 모스크를 헐어내고 현재의 광장을 만든 것이다. 당시 650여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당시 전쟁에서 패한 요르단이나, 민족의 정체성 조차 희미한 팔레스타인은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했다.

이후 통곡의 벽은 유대교 최대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2003년 3월 기독교와 유대교의 화해의 표시로 36년만에 성지를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통곡의 벽을 찾아 평화의 기도문을 바위틈에 꽂고 중동평화를 기원했다.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세계의 유명인사들은 코스처럼 통곡의 벽을 방문해 의미 있는 말 한마디씩 던진다.

이스라엘 국내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결단을 내릴 때는 통곡의 벽을 방문해 기도를 드리고 결연한 의지를 표현한다.

통곡의 벽은 이스라엘 최고의 관광장소이기도 한다. 이스라엘을 떠나는 방문자들의 여론 조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가 통곡의 벽이라고 한다. 통곡의 벽은 이미 종교적인 성지를 넘어 관광명소도 된 셈이다.

 


비좁아지는 통곡의 벽.


지난 10월 9일, 유대인 최대명절 중에 하나인 초막절에 통곡의 벽에 모인 기도인파는 역대 최고치를 넘어섰다.

현재 통곡의 벽 수용 가능한 참석 인원은 45,000여명. 그러나 이날 대제사장의 축복기도시간인 오전 10시를 전후에 모인 인원은 약 70,000여명이 밀려들어 경찰은 안전을 위해 네 개의 출입구를 조기에 차단해야만 했다.

현대의 종교성이 점점 희박해 진다는 추세와는 달리 이스라엘 종교성향은 점점 강해진다. 지난 10월 초 최대신문 예디옷아하로노트가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설문에 참여한 64%의 유대인이 대속죄일에 금식에 참여하고, 64%가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믿고 있으며, 종교인이든 세속인이든 응답자의 40%가 최근에 더욱 유대교에 가까워 졌다고 답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장기적인 분쟁과 레바논 전쟁으로 불안해진 정세가 더욱 종교와 가깝게 된것이다.

통곡의 벽이 늘 비좁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번 초막절을 계기로 통곡의 벽을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확장 시 가장 우선시 되는 장소가 므그라비 통로다. 성전산으로 들어가는 므그라비 통로는 지난 2004년 2월 폭우와 약간의 지진으로 붕괴되어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던 유대인들을 놀라게 한 곳이다. 이 문은 주로 비 모슬렘과 이스라엘 보안경찰요원들이 출입하는 문으로 성지순례객들은 이 문으로 들어간다.

통곡의 벽 담당랍비는 이번 절기가 지나면 통곡의 벽 확장을 위해 본격적으로 일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이 므그라비경사로를 제거하면 약 5천 여명의 인원을 더 수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확장하기 위해 수용되는 땅은 세계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이다.

 


이 정부, 므그라비경사로 철거 승인

2년 여간의 고심 끝에 지난 7월, 이스라엘 정부는 므그라비 경사로 철거를 승인했다. 비록 자연적으로 파손된 므그라비통로가 북편으로는 통곡의 벽이나 남편으로는 고고학발굴지 어느 쪽에 위협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므그라비문이 스스로 붕괴되어가고 있는데다가, 혼란스러운 팔레스탕인의 정세를 볼 때 지금이 적기라고 입을 모은다. 아마도 므그라비통로 공사는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인근 지역을 담당했던 고고학자 메이르 벤 토브는 "이 지역의 발굴은 이미 고고학발굴조차 고고학 영역이 아닌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영역이다."라고 말하며, 모슬렘 영역의 건물 제거는 양측 분쟁을 유발 할 수 있는 매우 민감한 사안으로 피를 부르는 높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1900년대 초 평화롭게 어울리던 토속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이 분쟁에 도화선이 된 것이 통곡의 벽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29년 이른바 '통곡의 벽'사건이라고 불려지는 종교단체간의 폭력 및 대치 사건은 통곡의 벽에 찾아와 기도만 하던 유대인들이 남녀 장소를 분리하기 위해 분리대를 설치하는 공사를 벌이자 팔레스타인들이 돌을 던지며 물리적으로 맛섰던 것이다. 자신들의 시설물에 들어와서 영지를 훼손한다는 이유였다. 이 사건은 결국 세겜 욥바 가자 등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수백 여 명이 사망했다.

지난 7월, 므그라비통로 제거 소식이 전해지자 알 타미미 이슬람종교재판장은 국제사회와 아랍권에 이스라엘의 이슬람영지 침탈을 막아달라 호소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번 통곡의 벽 확장설이 나돌면서, 이미 종교영지를 파괴당한 경험이 있는 이슬람교 지도부들은 아랍권 언론에 이스라엘의 이러한 움직임을 계속 알리며 이슬람을 자극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붕괴 위험을 명분으로 제거를 결정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모슬렘은 종교영지의 침탈로 간주한다.

더욱이 이 자리에 유대교 성지인 통곡의 벽이 확장된다면 예측하기 힘든 위험과 분쟁을 초래할 것이다. 결국 통곡의 벽 확장을 빌미로 제거되는 므그라비통로 사건은 다시 한번 이-팔 충돌의 도화선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 본 글은 다음 카페 이스라엘투데이에서 스크랩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