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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반에 샤름 알 세이크에 도착했다.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비싸고 고급인 휴양지라고 들었지만 버스터미널은 중심지에서 떨어진 벌판에 세워져 있어서 아쉽게도 고급 휴양지를 볼 기회는 없었다. 다하브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길 약 20분, 도착한 버스에서 왠지 모르게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무리가 내려서 가까이 다가가 봤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버스가 다하브로 가는 버스였던 것. 결국 목적으로 했던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무리에게는 말도 한 번 못 걸어보고 황급히 버스를 탔다. 버스로 한 시간여, 드디어 필자의 마지막 여행지인 다하브에 도착했다. 다하브 버스 터미널은 작지만 깔끔하다. 하지만 도착한 여행객들에게 달라붙는 운전사들이 골칫거리. 그렇다고 시내까지 걸어서 가기도 살짝 먼 거리라서 결국 달라붙는 이들과 협상을 잘 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주로 소형 픽업트럭을 끌고 다닌다. 원래 다하브 시내와 터미널 사이는 10파운드 정도면 적절한 가격이지만, 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는 운전사들과 10파운드에 합의를 보기란 힘든 일. 결국 우리 셋은 아까 봤던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무리에게 슬쩍 다가가 본다. 구성은 네 명,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걸 보니 분명 한국 사람이다. 같이 타고 가요- 하고 저쪽 일행의 왕누님에게 은근슬쩍 협상을 맡긴다. 왕누님은 은근히 아랍어도 할 줄 알고 성격도 괄괄하신 듯해 보여 안심이 된다. 처음에 협상을 건 녀석은 약간 얼토당토 않은 가격을 불러 패스. 그런데 다음 녀석과 협상을 하려고 하는 데 처음의 녀석이 방해를 하는 게 아닌가! 방해 공작이 잘 되지 않자 자기들끼리 싸우는 모습. 대략 그런 걸 보면 참지 못하는 필자, 주책없게 또 나서서 처음 녀석에게 다가가 꺼지라고 가슴팍을 밀어 버렸다. 그런데 이 녀석, 주변에 경찰이 없는 것을 믿는지 오히려 나한테 눈을 부라리고 덤벼든다. '경찰 부를까?' 했더니 '불러!' 하며 세게 나온다.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약해도 외국인에게는 강한 필자다. 주먹을 한 번 쥐어 보이니 영어로 마구 욕하며 자기 차로 돌아간다. 그 사이 왕누님은 다른 녀석과 10파운드에 협상을 성공시켰고, 우리는 이전에 추천받았던 Fighting Oasis Kangaroo라는 숙소로 향했다. 차 뒤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흥분하지 말자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깨 버린 것에 살짝 참회.
그런데, 오아시스 캥거루에 도착하니 빈 방이 없었다. 정미 누나는 터키 여행을 같이 했던 일행 중 한 명을 만나서 방을 같이 쓰기로 했고, 나머지 여섯 명은 어쩔까 하며 밖으로 나왔다. 세븐 헤븐이라는 곳에서 호객꾼으로 보이는 느끼 100%의 남자가 계속 따라 붙었지만 다하브 도착 전에 세븐 헤븐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많이 들어서 무시하기로 했다. 뭔가 고난의 연속인 다하브의 시작. 그렇게 숙소를 알아보러 돌아다니다가 해변으로 나왔다. 고난의 연속이고 기분 나쁜 일이고 싹 날아가는, 그야말로 사람을 '정화'하는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후루가다에서 본 홍해도 맑았지만, 다하브에서 본 홍해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리조트만 잔뜩 있는 후루가다의 해변에 비해 홍해 쪽은 예쁜 노천 카페들로 채워져 있어서 분위기도 다르다. 그야말로 잘 꾸며진 휴양지. 물가도 다른 휴양지에 비해 월등히 싸니, 여기는 그야말로 천국이다. 숙소를 알아보러 돌아다니기를 한 시간여, 몇 군데 방이 빈 곳을 발견하고 다시 오아시스 캥거루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매니저가 2인실 하나가 비었다고 한다. 논의 끝에 건이와 내가 그 방을 쓰기로 하고 왕누님 일행은 아까 발견한 숙소들 중 하나를 골라서 가기로 하였다. 그래서 우리 일행의 숙소는 오아시스 캥거루로 낙찰.
오아시스 캥거루에는 한국인 다이빙 강사가 있다. 이름은 김해랑, 94학번이라고 하니 왕언니 수준이다. 하지만 필자가 새내기일 적에 어울렸던 형들도 94학번이니, 부담스럽지는 않다. 무엇보다 그 형들에게 '동기야!!'라는 말까지 듣지 않았나. 쳇쳇. 해랑 강사님 말고도 한국인들이 무척 많았다. 모두 여자, 라는 단점이 있었지만. 어떤 사람은 러브히나 같은 하렘이 마음에 들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그렇지 않다. 왠지 모르게 여자들이 대다수인 모임에서는 자연스레 남자가 따돌려지기 마련인 것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남녀 비율이 비슷하거나 남자 수가 많은 쪽이 훨씬 낫다. 하렘은, 그냥 꿈일 뿐이다 - 그 많은 수의 여자들은 대부분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ㅠ_ㅠ. 여튼 체류하던 여자들의 수는 5명. 필자의 기억 어디엔가에 문제가 생겨서 이름이 기억이 안 나지만, 1. 중국에서부터 육로로 이집트까지 8개월 동안 여행 중이었던 조피디 누님 - 필자 보다 두 살 위, 자기 스스로 조피디와 닮았다고-_-; 정미 누나는 한사코 빈을 닮았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어떨까? ^-^; 2. 길쭉길쭉한 몸매가 인상적이었던 회계 양 - 필자와 같은 나이로 여자들 모임의 회비 관리 역할, 여자들 모임은 심지어 밥을 직접 해 먹고 있었다. 3. 정미 누나와 같이 방을 쓰고 조그마한 체구의 헤나문신 양 - 역시 필자와 같은 나이에 놀고먹자 주의로 필자 체류 중에 팔에 헤나문신을 하고 등장, 필자 도착 당시 20일이 넘게 체류 중이었지만 바다에 한 번도 안 들어갔다고. 대체 뭘 한거냐! 4. 보이쉬한 이미지의 엠피쓰리 양 - 필자보다 한 살 아래로 항상 엠피쓰리를 목에 걸고 다녔다. 보이쉬 스타일 안 좋아하므로 패스, (저기요-_-;) 5.데굴데굴 굴러다닐 것처럼 생긴 데다가 하는 짓과 말투도 귀여웠던 선생님 - 84년생이고 건이에게 털실로 팔찌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줘서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엠피쓰리 양과 함께 필자 도착 하루 후 떠날 예정이었지만 다하브의 마수에 걸려 주저앉아 버렸다. 어딘지 모르게 '캐릭터 소개'처럼 되어 버렸지만, 아무튼 뭐 이 정도였다.
일단은 밥을 먹어야지, 다하브 해변 레스토랑에는 한국 국기와 일본 국기를 걸어놓고 있는 썬 레스토랑이라는 곳이 있다고 들었다. 동양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스노쿨링도 공짜로 빌려주고 있다고. 주인이 별로 장사할 의지가 없다는 평도 있었다. 왠지 궁금하니 점심은 그 쪽에서 해결하기로 한다. 대략 식사는 10~20파운드 정도, 가격대비 질은 괜찮은 편. 거기다가 부활절 막바지를 맞아 대거 몰려온 서양인들(이라고 쓰고 '야만인들'이라고 읽는다) 꼬락서니를 안 봐도 돼서 마음에 들었다. 건이는 다하브에서 어드밴스 다이버 과정까지 마칠 생각이라고 해서 같이 다이브용 물안경을 사러 가기로 했다. 기념품에 별 관심이 없는 필자는 쇼핑이라는 건 다하브에서 처음 해 본다. 악세사리라던가, 옷이라던가 의외로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역시나 휴양 천국이구나-. 몇 군데 다이브 용품점을 들렸다가 결국 멋있는 물안경을 산 건이. 잘 샀어, 잘 샀어를 연발하며 혼자 흡족해 한다. 웃긴 녀석. 뭔가 저녁 때가 되니 여자들 모임은 밥을 하기 시작한다. 일단은 아직까지 손님-이라는 것으로 식사 준비는 면제 받고 대신 설거지 임무를 부여받았다. 메뉴는 볶음밥. 들어보니 식사 준비는 돌아가면서 하는 것 같고, 오늘의 차례는 회계 양인 듯. 이것저것 챙기는 성격과는 달리 밥은 그저 그랬다 -_-; 얻어먹는 밥에는 일절 왈가왈부 하지 않는 필자는 그냥 맛있게 먹었다. 해랑 강사의 술타령에 어디에선가 이집트 병맥주의 일류 브랜드 '스텔라'를 사온 헤나문신 양. 어디서 난거야!! 라고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해랑 강사는 뭔가 계속 술을 먹이려고 하지만, 여행 나와서는 술을 잘 안 마시는 필자다. 술을 잘 못해요-라는 말과 함께 한 병 정도로 정중히 사양한다.
다음날 아침, 숙소 한가운데의 모임터-_- 같은 곳에 하나둘씩 어슬렁어슬렁 나타난다. 여자들 모임은 팔라펠 등을 사와서 아침을 먹는다. 팔라펠은 이미 이스라엘에서 지겹도록 먹은 필자는 사양하려 했지만, 해랑 강사가 자기 팔라펠을 반 잘라서 내 앞에 던져 놓는데야 별 수 없다. 건이와 정미누나는 선생님에게 팔찌 만들기를 배우고 있다. 필자도 배워볼까 했지만 성격상 제대로 된 팔찌를 만들기 전까지 숙소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만드는 걸 보기로만 한다. 헤나문신 양이 목덜미부터 팔까지 헤나문신을 하고 나타난 것도 이 때. 뭔가 여유롭게 오전 시간을 보낸다. 오후에는 썬 레스토랑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건이, 정미 누나, 엠피쓰리, 선생님과 함께 스노쿨링 시작. 썬 레스토랑에 같이 있던 일본인도 어울렸다. 등대 쪽의 포인트가 가장 아름답다. 다하브에서 6개월째 체류 중이라는 도사 풍의 일본인 아저씨가 소개해 준 포인트는 바닥이 계속 산호로 이어지다가 갑자기 깊어지는 곳. 수영을 못한다며 구명조끼 입는 것에 모자라 내 팔을 붙들고 스노쿨링하던 정미 누나는 계속 소리를 질러댄다. 덕분에 스노쿨링 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물안경만 낀 채 바다로 들어간 필자는 고단함의 연속이다. 하지만 물안경 너머로 바라본 홍해 바닷속은 이세계(異世界)였다. 수족관에서나 보던 열대어들이 바로 내 앞을 지나가고,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산호들의 색은 선명하고 아름다워진다. 거기에 가끔 떠 있는 해파리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살아있는 해파리를 본 것도 사실 처음. 수영을 잘 못한다는 선생님도 어느 새 익숙해졌는지 혼자 스노쿨링 밖으로 물을 뿜으며 잘 떠다닌다. 한 팔에 정미 누나를 매단 채 물안경으로 보다가 숨차면 뒤집어져서 쉬는 것을 반복하던 필자도 돌아가기 전에 건이의 스노쿨링을 빌려서 스노쿨링이라는 것을 한 번 해 본다. 오옷-! 편하잖아!! 문명의 이기라는 건 역시 대단한 거다 ^^
저녁 시간. 다음날 떠나야 하는 필자, 얻어먹으면 대접하는 것이 도리이기에 저녁 식사를 책임진다고 하고 나섰다. 건이와 함께 이것저것 시장을 보고 볶음밥 준비에 들어간다. 9인분 식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한 적은 없어서 약간 걱정됐지만, 뭐 대충 잘라서 넣고 볶으면 되는 게 볶음밥이다. 오늘의 메뉴는 참치햄볶음밥. 다진마늘 약간과 채썬 양파를 식용유를 두른 후라이팬에 우선 볶아주고, 소세지는 잘게 깍둑썰어서 참치와 함께 볶아준다. 밥은 소금기가 섞인 수돗물로 지어 약간 짭짤하게 간을 맞춰 준다. 절대 밥을 할 민물을 떠오는 것을 깜빡하고 수돗물로 지은 게 아니다. 다 의도된 것이다. [퍼-억] 어차피 먹는 사람은 모른다. [퍽퍽퍽] 아무튼, 이런 정도로 볶다가 양이 많으니 후라이팬 두 개에 나누고 밥을 넣어서 다시 볶는다. 동시에 다른 후라이팬에서 계란 프라이를 준비. 건이와 정미 누나가 거들어 주지 않았으면 양과 시간, 양쪽 면에서 패배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베르쨩표 참치햄볶음밥 완성! 원래는 각자의 접시에 밥과 계란을 예쁘게 올려놓아 서빙할 생각이었지만, 접시가 모자라 그냥 양푼볶음밥-_-으로 대체한다. 뭔가 필자의 미학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여자들 모임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평가는 A제로 정도? 수돗물로 지은 것만 들통나지 않았다면 분명 A플러스인데 말이다. 눌어붙은 밥을 해결하기 위해 숭늉을 내온 것이 패배의 원인이었다. 숭늉에서 느껴지는 짠맛을 놓치지 않은 헤나문신 양이 태클을 걸어온 것. 날카롭기는, 쳇. 식사 도중, 내일 오후에 떠나요- 라고 하니 다들 가지 말라고 붙잡는다. 하지만 한 번 정한 여행 일정은 바꾸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을 체득한 필자, 마음은 더 남고 싶었지만 가야할 때를 아는 이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떠나기로 한다. 어차피 두세번 붙잡다가 말 것임을 알기도 했고 ^-^; 아무튼, 그래서 마지막날의 밤을 등대 앞의 바에서 보내기로 한다. 맥주라면 스텔라! 라는 스텔라를 각자 한 병씩 들고 건배! 낮에 '보는' 홍해도 환상적이었지만, 밤에 '들리는' 홍해도 정말 운치 있었다. 그렇게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밤은 지나갔다.
마지막날의 아침, 썬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고 떠날 채비를 한다. 여자들 모임에게 인사를 하고 터미널로 가는 지프를 타기 위해 나온다. 늦잠을 잔 정미 누나는 눈을 비비며 건이와 함께 배웅을 나와 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의 이집트 여행 동료 두 명에게 이메일 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일주일 정도의 공동 생활이었지만 그 소중한 추억은 잊기 힘들 것 같다. '정말 가는구나-' 하는 정미 누나의 아쉬운 말을 뒤로 남기고, 지프에 올라탄 필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손을 흔든다. 왠지 뒤를 돌아보면 아쉬움이 더할 것 같아서... 안녕, 동료들. 안녕, 이집트-. - 베르쨩의 이집트 여행기,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