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행기 (8) - 시와 마을

 

새벽 4시인가까지 주절주절 수다를 떨다 잠이 든 우리들. 일찍부터 잠에 든 노조미 씨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어쩌랴 그렇게 된 것을. 다음날 아침 9시 정도에 일어나니 훌륭한 운전사 아저씨께서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가야할 때로구나- 생각 되서 자는 사람들을 깨우고 갈 준비를 한다. 은근히 캠프에서 마을까지는 얼마 안 떨어진 거리였다. 순식간에 요세프 호텔로 다시 돌아와 버렸다. 우리가 돌아오자 다른 한국 사람들 팀이 사막투어를 떠나려고 준비 중이었다. 키부츠에서 왔다는 세 사람과 홀로 여행객 두 명. 우리는 감자 구워 먹기 등의 노하우를 알려 주고 사막의 신비함과 장대함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부디 좋은 여행 하시길-

일단 좀 씻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노조미 씨는 무려 10시 30분 버스로 카이로에 있는 대사관에 들려 비자를 연장한 후 요르단으로 넘어간다고 하며 먼저 떠나 버렸다. 나머지 넷은 하루 정도 쉬었다가 떠나기로 했다. 연장자인 정미 누나는 씻고 난 후 침대에 붙어 버렸고, 남자 셋은 자전거를 빌려 근처에 있는 아문 신전과 알렉산더가 신탁을 받은 신전 등을 보러 가기로 했다.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가길 40여분, 분명 얘기를 듣기로는 15분에서 20분만 가면 나온다던 신전은 나올 생각을 안 하고, 광활한 사막이 펼쳐진 곳으로 나와 버렸다. 심지어 바닥에는 당나귀 뼈까지 굴러다니고, 신전이라고는 기둥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걸까, 하고 머리를 맞댄 세 사람은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 어디에선가 길을 잘못 들었으리라고 추측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신전으로 들어가는 골목을 아이들의 무리에게 인사하느라 놓쳐 버렸던 것이다. 골목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들어가니 신탁의 신전이 나오고, 클레오파트라가 목욕을 했다는 샘이 나온 다음, 마지막으로 아문 신전이 나왔다.




[신전이 어딨다는 거야!!]


[보이는 건 당나귀 뼈. 으스스~]


생각 없는 이들이 시와 마을의 행정 건물을 짓는 데에 이 신전에서 돌을 빼내어 지금의 초라한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대체 신전을 파괴하면 신의 분노를 살 것이라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는 것인가?!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신전의 부조를 보며 분노를 달랠 수 있었다. 클레오파트라의 목욕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고, 옛날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신탁의 신전으로 향한다. 나름대로 큰 크기의 신전, 아무래도 요새의 역할도 같이 겸하고 있었던 듯 하다. 정작 신전이라고 할 만한 부분은 그렇게 크지는 않다. 오히려 망루에서 내려다 보는 경관이 멋있는 걸 보니, 확실히 신전보다는 요새 쪽의 비중이 높은 듯. 일몰은 같이 보러 가자고 했던 정미 누나의 말이 있었지만, 길을 잘못 들어 시간을 낭비한 까닭으로 일몰은 남자 셋이 보게 되었다. 뭔가, 미안-.


[지금은 허물어진 아문신전]


[그래도 남아 있는 부조는 여전히 신비스럽다]


[신탁신전의 자취. 여느 이집트 신전과 비슷한 구조]



[신탁신전에서 본 일몰광경]


숙소에 올라가니 옥상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뭐야, 뭐야, 하며 옥상으로 올라가니 정미 누나가 옥상에서 보이는 고대 마을 유적을 향해 밥 먹자!! 하고 소리를 치고 있었다. 어깨를 툭툭 치며, 여기 있어요- 하니 깜짝 놀라는 정미 누나. 알고 보니 유적지에서 보이는 사람 그림자가 우리인 줄 알고 계속 소리 지르고 있었다는 것. 코믹 캐릭터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우리가 맞다고 해도 소리 치지 말라구!!



[이곳이 고대 마을 유적]


저녁은 휴식과 회복을 위해 레스토랑으로. 마을 주변에 있는 야자수 숲길을 따라 조금만 가다 보면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는 골목을 발견할 수 있다. Lonely Planet에서도 추천하는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가 야외의 식탁으로 안내 받았다. 부, 분위기 좋다!! 한솔 형이 야심차게 20파운드 짜리 샐러드를 사고, 우리들도 각자 다른 메뉴를 골라 부페식으로 먹기로 결정. 아쉽게도 샐러드에는 올리브 유를 비롯한 각종 향신료가 뿌려져 있어 필자 이외에는 아무도 먹으려 들지 않았다. (필자의 신조: 카레 아닌 모든 음식은 다 먹는다!) 이 레스토랑, 분위기가 정말 죽인다~! 서로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와 함께 왔어야 한다고 투덜투덜. 그래도 오손도손 식사를 같이 하니 정말 재미있었다는-.



[레스토랑이 이렇다!! 다른 '보통'의 레스토랑이 아닌 진짜 레스토랑]



[코믹 캐릭터 정미 누나]



[왕따놀이 건이]

식사에 여념이 없어서 음식 사진을 못 찍은 건 조금 아쉬웠지만, 맛있게 먹었으니 되었지 아니한가. 레스토랑 1층의 배경이 어딘가의 게임에서 나온 교회와 비슷해서 한 장 찍어 보았다. 왠지 레스토랑 지하에 관이라던가 손이 묶인 프릴 드레스의 여자라던가가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알아보려 하지 않고 숙소로 발길을 돌린다. 지나친 호기심은 배드엔딩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했던가. 여튼 숙소로 돌아와서 옥상에 앉아 과일을 깎아 먹는다. 연장자인 정미 누나, 멜론의 약 1/5를 껍질과 함께 날린 후 우리에게 과일을 배분해 주었다. 건이가 '제가 깎을게요' 하더니 익숙한 솜씨로 슥슥 깎아 다음 멜론을 배분해 준다. 누군지는 몰라도 건이를 데려가는 여자는 고생없는 삶을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 '나도 돌아가면 과일깎는 연습을 해야지'라고 중얼중얼.

다음날 아침, 사막에서 돌아온 이들을 환영한다. 어째서인지 키부츠에서 온 세 명 중 여자 두 명은 지쳐 보이고, 홀로 여행객들은 팔팔하게 재미있었어요-! 라며 웃음.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같이 간 다른 지프가 계속 모래에 빠져서 덩달아 신나게 달리지 못했다던가. 그리고 여자 두 명은 밤새 벼룩에 시달린 모양. 쿡쿡... 아무튼 이제 이동해야 할 날이다. 한솔 형과 필자는 10시 반 버스로 떠나기로 한다. 한솔 형은 마르사 알람, 필자는 알렉산드리아. 정미 누나와 건이는 야간 버스로 알렉산드리아 행. 필자는 조금 일찍 도착해 알렉산드리아를 돌아볼 생각이고, 정미 누나와 건이는 아침에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해 오전 시간에 돌아본다는 계획. 아무튼 이 셋은 다하브로 갈 예정이고, 한솔 형은 마르사 알람에서 카이로-룩소르-아스완으로 내려갈 예정.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한솔 형과 필자는 고작 2분 차이로 버스를 놓쳐 버리고... 마르사 알람 행 버스는 1시 30분에 있지만 알렉산드리아 행 버스는 야간 버스밖에 없다. 거참, 운명도 얄궂다. 그래서 결국 이 네 사람은 점심이나 같이 먹지 뭐... 하면서 호텔 앞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한솔 형은 1시 30분 버스로 마르사 알람에 갔다가 그 다음날 점심에 알렉산드리아로 온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점심이나 같이 먹자는 생각. 나머지 셋은 야간 버스로 알렉산드리아로 갔다가 다시 야간 버스로 샤름 알 세이크를 거쳐 다하브로 가기로 했다. 뭔가 운명 공동체 비슷.

1시 30분 버스로 떠나는 한솔 형과 홀로 여행객 두 명을 배웅한 뒤, 조금 늘어져 있다가 키부츠 출신 세 명을 꼬셔 판타지 아일랜드(분명 영어 스펠링은 조금 달랐지만;)로 떠난다. 이 곳은 펼쳐진 모래벌판과 작은 물 웅덩이들이 석양을 만나면 어떻게 그림으로 변하는가 체험하는 곳. 그에 걸맞게 정말 이채로운 하늘과 땅을 보여준다. 당나귀 마차를 타고 가야 하지만, 전혀 그 가격이 아깝지 않은 곳. 그야말로 '환상의 섬'-.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나눠 탄 두 대의 당나귀 마차가 서로 경쟁이 붙었다. 누가 더 빨리 가는가- 덩달아 뒤에 탄 우리들도 신나서 달려-! 얄라얄라-! 하며 동심으로 돌아가 버렸다. ^-^; 승리는 우리 쪽, 기분이 좋아 1파운드를 팁으로 더 준다. 누가 뭐래도 이기는 건 기분 좋아-.



[환상의 섬, 환상의 하늘]



[떠나고 싶다!!! ..라는 컨셉 ㅋㅋ]


[조금 노출 줄이고...]



[They're from Kibutz!!]

저녁은 어제의 그 레스토랑에서 또 먹고, 이제 야간 버스로 시와를 떠나야 할 시간. 호텔로 돌아와서 가방을 챙기고 보니 TV에서 '대장금'이 나오고 있었다! 아아, 대장금은 이제 이집트까지 진출한 거로군. 낯설은 아랍어 자막과 함께 나오는 이영애의 얼굴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안타깝게도 필자는 군대 사정 상 대장금을 단 한 편도 보지 못했지만 말이지. 쿡쿡... 야간 버스에 몸을 싣고, 알렉산드리아로 향한다. 알렉산드리아에는 무엇이 있을까- 쿨쿨...



[화제의 드라마, 대!장!금!]